아픈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 꼭 지켜드리고 싶다
일흔여덟, 자식 위해 산 그 세월 뒤에 남은 건 지치고 아픈 육신 뿐...
아픈 아버지의 유일한 행복은 어린 손주 보는 것. 그 마지막 행복, 꼭 지켜드리고 싶다.
밥 세끼보다 약을 더 많이 드시는 내 아버지. 그 아버지 내 곁에 언제까지 계실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우리 아버지 내가 대학 입학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너 여자친구 없냐?”하셨다. 대학 4년 내내 우리 아버지 나에게 궁금한 것은 오직 여자친구였다. 졸업 후 처음 취업한 직장에서 지금 아내 만나 결혼했다. 내가 결혼하자 아버지는 “이제 자식 다 여의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하시며 무척이나 평온한 표정을 지으셨다.
난 그 때 알았다. 우리 아버지가 왜 그리도 여자친구 이야기를 자주 했는지... 두 번이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아버지, 자꾸만 약해가는 당신을 보면서 당신 살았을 적에 내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게 우리 아버지 마지막 소원이었다.
우리 아버지 이제 일흔 여덟. 지금 많이 아프시다. 고혈압약, 심장약, 전립선약, 허리통증 약 등 밥 세끼 보다 드시는 약이 더 많다. 냉장고에도 약, 방안에도 약, 부엌에도 약... 온통 집안에 아버지 약으로 가득하다. 자식 위해 산 세월, 그 세월의 무게 탓이리라. 아픈 내 아버지, 그 아버지 언제까지 내 곁에 계실까 생각하면 그리도 마음 아플수가 없다.
하지만 난 그런 아버지에게 해 드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시골 갈 때 비싸고 맛있는 것 대신 난 매일 두부며 콩나물, 버섯 등 된장찌개거리 밖에 못 사간다. 용돈도 제대로 못 드린다. 나도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싶다. 하지만 돈 앞에서 난 그리하지 못한다.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것 못사드릴 것도 아니지만, 그리하면 한 달에 20여만원 정도가 시골 갈 때마다 필요하다. 솔직히 나에게 부담스러운 돈이다. 그래서 돈 때문에 한 달에 2-3번 가던 시골을 한 번으로 줄인 적도 있었다.
늘 어린 손주들이 보고픈 아버지! 아픈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 꼭 지켜드리고 싶다!
하지만 내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 꼭 지켜드리고 싶었다. 돈 때문에 내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 빼앗고 싶지 않았다. 일흔 여덟 내 아버지, 백발이 성성한 내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은 바로 어린 손주들 보는 것. 어린 손주들 재롱 보고, 당신 옆에 재우며 함께 자는 하룻밤이 그리 행복할 수 없다하시는 아버지. 당신 앞에서 재롱도 피우고 까르르 웃는 어린 손주들의 웃음은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이리라.
그래서 난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 지켜드리고 싶어 맛있는 것 대신 두부 사가고 용돈 대신 콩나물 사면서, 그 돈 아껴 자주 시골 가는 못난 방법을 생각해냈다. 누군가 ‘돈이야 또 벌면 되지. 부모 떠난 후에 후회하면 뭐할 겁니까.’ 하면서 야단쳐도 난 할 말 없다. 꾸중 들을 일 하고 있다는 것 나도 아니까.
일흔여덟 내 아버지. 아픈 몸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시는 내 아버지. 그 아버지 찾아 한 달에 1번 간다고 해도 1년에 12번, 2번씩 간다고 해도 겨우 24번 밖에 되지 않으니, 살아 생전 내가 아버지 행복 몇 번이나 찾아드릴까?
시골 갈 때마다 두부와 콩나물만 사 가지고 가는 내 마음 무겁다 하더라도, 그래서 이 다음에 많은 후회하면서 마음 아플지라도, 난 내 아버지 마지막 행복만큼은 꼭 지켜드리고 싶다. 비록 돈 없지만, 그래서 맛있는 것도 못 사드리고 용돈도 제대로 못 드리지만, 어린 손주들 보며 행복해 하는 내 아버지의 마지막 행복만큼은 꼭 지켜드리고 싶다.
“아버지, 애들 데리고 또 금방 시골 내려갈게요. 그 때까지 건강히 잘 계세요. 못난 자식이 할 줄 아는 게 이것 밖에 없네요. 너무 죄송해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