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외면, 언론자유 외치던 언론 어디로?
삼성은 누가 뭐래도 '대단한 삼성'이다. 우리나
라를 대표하는 제1의 기업이며, 우리의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기도하다. 또한 우리나
라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고, 또한 선호하며
꼭 취직하고 싶어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정 반대로 ‘삼성공화국’ 이라고 불리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삼성의 독재권력이 우리사회를 움직인다는 거센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 이 두 가지 엇갈린 평가에서 공통적인 점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삼성! 정말 대단하다. 남들이 눈에 훤히 보이는 차떼기로 사과 박스를 전달할 때 우리의 대단한 삼성은 최첨단 기법인 ‘책떼기’를 통해 검은 돈을 정치권에 넘겼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삼성을 보고 일부에서는 ‘역시 삼성이라 비자금 전달하는 것도 다르군!’하면서 그 남다른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는 우스운 일도 벌어졌었다.
삼성 고위층 인사의 '비자금 폭로 사건' 과 침묵한 언론! 삼성의 힘인가? 비겁한 언론인가?
그런데 삼성의 이 대단함은 또 한번 여지없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얼마 전 삼성의 핵심인 구조조정본부에서 전무급 법무팀장으로 있던, 삼성의 최고위급 인사가 ‘삼성 비자금 50억’이라는, 실로 엄청난 내부비리를 고발했다. 지금 삼성이 이를 부인하고 있고 법에 의해 결정이 나지 않은 일이니 폭로를 사실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 수십억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폭로의 대상자가 삼성의 최고 고위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다.
나는 당연히 늘 뉴스거리에 목말라 하는 언론에게 이 폭로 사건은 신문의 헤드라인과, 사설, 그리고 심층기사로 이어질 거라 믿었다. 비자금 문제의 진원지가 우리나라 제1의 기업 삼성이고, 또한 폭로 당사자가 삼성 최고위직 인사이고, 또한 그동안 우리사회 전방위에 걸쳐 삼성의 돈 로비가 있다는 여러 정황적 사실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는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자금 폭로가 나온 직후 언론보도를 보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사회면 구석에 2단 기사로 처리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부분 신문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고작해야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이 2면에 배치한 것이 그나마 눈에 띈다. 한겨레와 오마이 뉴스 등 만이 1면을 비롯해 여러 면을 할애해 이 사실을 보도, 분석하는 기사를 내 보냈을 뿐이다.
역시 대단한 삼성인가? 역시 삼성의 광고자본이 언론을 지배한 것인가? 그렇다면 삼성은 정말이지 대단한 삼성이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삼성이 대단하다면? 그럼 언론은 뭘까?
비겁하다! 정말이지 비겁하고 또 비겁하다. 과연,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그룹의 핵심 가운데 핵심인 구조조정본부에서 전무급 법무팀장까지 지냈던 사람이 폭로한 '삼성비자금 계좌' 사건이 어떻게 2단, 3단 기사 하나로 처리하고 끝낼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난번에도 정부의 취재선진화 방안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 침해’라며 우리나라 언론 사상 두 번째로 편집ㆍ보도국장들이 모여 ‘언론자유 수호’를 외치던 그 언론들을 향해 나는 언론의 자유를 외치기 전에 ‘지금의 언론과 기자들에게 과연 ‘양심’과 ‘정론직필’에 대한 신념이 있는가?’ 에 대해 비평 글을 쓴 적이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 외치며 누드사진까지 싣고, 언론자유투쟁 선언까지 했던 그 언론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은 그 생각이 확고해 졌다. 지금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또한 비겁하다. 자본 권력에 굴한 비겁한 언론이다. 신정아-변양균 사건이 있을 때 언론은 연일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급기야 누드 사진까지 실었다. 누드 사진이 국민의 알 권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언론은 누드 사진도 ‘국민의 알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럼 삼성의 이번 비자금 사건은 국민의 알 권리 밖의 일인가? 누드 사진 보다 못한 사건인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의연하고 비장한 모습으로 외쳤던 그 언론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의 눈과 귀, 머리로는 돈으로 우리사회를 지배하려 했던 삼성의 비리폭로는 그냥 조그만 가십거리 기사에 불과했는가?
만약 기사가치가 없어서 그렇게 편집해 보도했다면 그것은 기자로서의, 그리고 언론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그런 능력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의 감시자로서의 언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 능력부족이니 그만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언론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만약 ‘비자금 50억’이라는 것이 삼성이 아닌 다른 곳, 또한 현 정권에서 고위급 공직자가 이러한 문제를 폭로했어도 과연 언론은 지금 삼성의 보도처럼 보이지 않는 저 구석에 2단이나 3단으로 처리하겠는가? 아마 신문에 도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언론은 비겁한 것이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자본권력에 굴복한 치욕적인 일이다. 그러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 ‘언론자유’를 외치다니, 지금 언론의 이 치졸한 모습에 전율을 느낄 정도이다. 다시는 국민을 팔아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우지 말라. 그리고 언론이 스스로 자본권력에 팔아넘긴 ‘언론자유’를 더 이상 외치지 말라. 보는 국민, 그 이중적 태도에 끊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