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고향의 풍경
마을에 하나 뿐이던 '교환전화기'... 잊혀진 우리 옛것들
장희용
2007. 11. 1. 09:17
지금은 쓰지 않는, 정겨움과
옛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들!
함께 감상해 보시겠습니까?
우리 부모님들이 쓰시던 옛 물건들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요. 시골에 가도 이런 물건 보기가 이제는 힘이 듭니다. 아마 지금 30대 이상되신 분들 중에 시골 사신 분들이라면 혹시 기억이 새록 새록 나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보니까 새삼 어린 시절,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추억과 함께 어린이나 청소년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옛 물건들에 대한 좋은 정보가 됐으면 합니다.
마을에 하나 뿐이던 '교환 전화기'...정겨움이 묻어 나는 옛 추억의 물건들을 보시면서, 아련한 추억속으로 한 번 떠나 볼까요?^^
이건 '풀무'라고 합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건데, 손잡이를 잡고 막 돌리면 사진 아랫 부분에 있는 구멍으로 바람이 나옵니다. 주로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쓰던 물건입니다. 저 어릴적에 시골은 대부분 아궁이에 불을 지펴 생활했는데, 이 때 요긴하게 쓰였지요.
그리고 추운 겨울이면 방아를 찧고 난 후 생기는 왕겨를 아궁이에 가득 넣고, 일단 이 풀무로 바람을 불어 불을 지핀 후 아궁이에 왕겨를 가득 넣어두면 밤새 왕겨가 서서히 타면서 방을 따뜻하게 해 줬습니다.^^
이 풀무 보니까 어릴 적 추억 하나가 생각나네요. 한 번은 왕겨를 잔뜩 넣고 마구 마구 이 풀무를 돌리다가 불이 확~ 하고는 아궁이 밖으로 솟구쳐나와 눈썹을 태워 먹은 적도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이건 '탈곡기'입니다. 가을에 추수할 때 쓰던 물건입니다. 지금이야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탈곡까지 하지만, 예전에는 일일히 낫으로 베고, 가을 들녘에 세워놓고 말린 다음 이 탈곡기에 탈곡을 했습니다. 완전 수동입니다.^^
피아노 칠 때 발로 누르는 것처럼 발로 꾹꾹 누르면 이게 막 돌아가는 데, 그 때 벼를 이곳에 대면 탈곡이 되는 거지요. 제가 어릴 적에 막 경운기가 시골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경운기와 함께 사용하던 탈곡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수동으로 하는 이 탈곡기를 이용해 가을 추수를 했답니다.
이건 '쟁기'입니다. 역시 경운기가 나오기 전, 시골에서는 논이나 밭을 갈 때는 소를 이용했습니다. 소 등에 멍에를 씌우고 이렇게 쟁기를 달아 논과 밭을 갈았습니다. 지금도 경운기를 쓰기 어려운 비탈진 산골 등지에서는 가끔씩 이 쟁기를 가지고 밭은 가는 장면을 볼 수가 있더군요.
하지만 역시 지금은 거의 그런 풍경을 찾아보기가 힘들지요. 뒤에 절구 방망이도 보이네요. 우리 시골집에도 아직 절구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 않습니다.
이건 '물지게' 입니다. 지게는 보통 짐을 실어나르는 짐 지게가 있고, 이렇게 물 등을 실어나르던 물지게가 있습니다. 꼭 물만 실어나른 건 아니고요, 좀 말하기 그렇지만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화장실이 아니고 다들 수세식이었는지라 화장실이 꽉 차면 나무를 연결해 길게 만든 바가지로 퍼 내서 텃밭 등에 거름으로 주었는데, 그 때도 이 지게를 사용했습니다. 일명 똥지게입니다.^^
이건 '얼맹이'라고 합니다. 주로 가을에 깨를 수확해 지푸라기 등 잡티를 골라내고 깨 알맹이만 걸러 낼 때 쓰는 물건입니다. 손으로 잡고 좌우로 흔들면서 탁탁 치면 깨만 구멍 사이로 빠져 나오지요.^^
이건 '키'라고 합니다. 히히! 오줌 싸면 이것 쓰고 마을로 소금 얻으로 다녔지요. 저도 딱 한번 이거 쓰고 진짜로 소금 얻으로 간 적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그 집에 무서운 멍멍이 놈이 있어서 날 보자마자 쫓아올 듯 하며 짖어대는 데... 어찌나 무서웠던지 엉엉~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이것도 얼맹이처럼 콩 등 곡식에서 작은 돌맹이나 다른 이물질을 골라낼 때 쓰는 물건입니다. 근데, 이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엄마가 곡식 등을 키에 올려놓고 위 아래로 흔들면, 이걸 '까불른다'고 하는데요, 신기하게도 곡식은 키 안쪽으로 모이고 돌 등만 키 맨 끝으로 밀려납니다.^^ 그러면 엄마는 휙~하고 돌 등만 땅에 떨어뜨렸지요. 저도 해 봤는데, 그게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마냥 신기하다는 생각입니다.^^
밑에 있는 것은 '닭어리'라고 합니다. 닭을 넣어 기를 때 쓰던 물건입니다. 병아리 보호를 위해 병아리를 이 안에 넣어두기도 했고요.
이건 '작두'입니다. 추수를 끝내고 나면 볏짚이 나오는 데, 시골에서는 소를 키웠기 때문에 이 볏짚을 그냥 버리지 않고 소 밥으로 썼습니다. 그냥 볏짚을 통째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 작두를 이용해 묶은 볏짚을 2~3 등분으로 잘라 소 밥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요즘은 잘 쓰지는 않고요 볏짚 자르는 기계가 대신합니다. 우리 시골집도 몇 년 전에 기계를 사긴 했는데, 에구 먼지가 하도 날려서 요즘에는 그냥 이 작두를 씁니다. 가끔씩 시골 가면 아버지와 함께 이 작두로 볏짚을 썰어 놓고 오곤 하지요.
이건 '망태기'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가방인 셈입니다. 주로 밭일이나 산에 약초 등을 캐러 갈 때 어깨에 메고 가곤 했습니다. 일하러 가기 전에는 호미 등도 넣고 가고, 일 끝나고 올 때는 이곳에다 그 날 먹을 고추며 채소 등을 넣어서 가지고 오곤 했습니다. 지금은 보기조차 힘듭니다.
이건 일종의 '멍석'입니다. 사각형 모양으로 넓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동그라미 모양으로 작은 것도 있습니다. 이건 주로 호박이나 가지, 채를 썬 무 등 채소를 말릴 때 쓰던 것입니다. 이 위에 널어놓고 햇볕에 말리곤 했지요. 이건 아직 시골에 가면 종종 봅니다.
이건 '재봉틀'입니다. 엄마들이 사용하던 거지요. 저도 기억나는 데, 왼쪽 밑에 실을 꿰는 바늘이 있는 데 엄마가 실을 잘 못 끼면 제가 끼워드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전기로 쓰는 자동 재봉틀이만 예전에는 이렇게 손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발을 이용해 돌리던 재봉틀을 사용하고 했습니다.
이것은 '풍선'이라고 합니다. 이 안에 벼를 넣고 돌려서 사용을 했는데요, 바람을 이용해 벼와 함께 섞여 있는 검불(지푸라기 등 여러 이물질)이나 쭉정이를 걸러내고, 충실한 알곡을 골라낼 때 쓰던 도구였습니다. 저에게도 무척 생소한 것이네요.
이건 '맷돌'입니다. 많이들 아실거예요. 두부를 만들 때 물에 불린 콩을 이렇게 위에 있는 맷돌 구멍에 넣고 갈지요. 그러면 사진처럼 콩물이 나오고, 이 콩물을 솥에 넣고 팔팔 끓입니다. 간수를 넣고, 천으로 만든 포대에 이 끓인 콩물을 넣은 후 기다랗고 굵은 나무로 꾸욱~ 누르면 천가마니 틈으로 끓인 콩물이 나오는 데, 이것을 네모난 틀 상자에 넣어두면 서서히 굳으면서 두부가 된답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맷돌이 돌인지라 혼자 돌리기는 좀 무리입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둘이 돌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끓이는 내내 솥에 들러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팔도 아프지요. 하지만 맛은 지금의 두부와는 비교가 안 되지요.^^
이렇게 어릴 적에는 맷돌로 갈아서 직접 두부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지금은 그 맛을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맨 왼쪽에 있는 것은 '남포등'입니다. 일명 '등잔'입니다. 석유를 넣어 쓰던 것으로, 전기가 부족했던 옛날에 요긴하게 쓰던 물건이지요. 그리고 맨 앞에 있는 것은 '되박'입니다. 쌀이나 보리 등 곡식의 수량을 세던 물건입니다. 한 됫박, 두 됫박...이런 식으로요.
위에 보면 고무신도 보이네요.^^ 어릴 적에는 '조선 나이키'라고 부르면서 고무신에 나이키 표시 해 놓고 신던 생각나네요. 뒷 부분을 뒤짚어 덤프트럭이라고 하면서 모래 등을 싣고 놀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보면 전화기가 있죠? 이거 생각나세요? ^^ 마을에 하나 밖에 없던 '교환기 전화'입니다.
보통 이 전화기는 마을 이장님 댁에 있었지요. 서울 누나 등에게서 전화가 오면 이장님이 마을 방송으로 "누구네 딸이 전화왔습니다. 빨리 오시기 바랍니다"하고 알려주면 얼른 달려가서 전화를 받고는 했지요. 전화를 걸 때도 일단 교환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잠시 뒤에 연결이 되던 그런 시절에 사용하던 전화기였습니다.
지금까지 보신 옛 추억의 물건들, 이제는 일상에서 거의 보기 힘든 것들입니다. 이제 우리 부모님들이 안 계시면 어머니의 손 맛이 담긴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간장 등.... 그 맛도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빠른 문명의 속도를 우리는 발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우리는 우리의 옛 것, 우리의 소중한 옛 문화들이 너무도 빨리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옛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들!
함께 감상해 보시겠습니까?
우리 부모님들이 쓰시던 옛 물건들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요. 시골에 가도 이런 물건 보기가 이제는 힘이 듭니다. 아마 지금 30대 이상되신 분들 중에 시골 사신 분들이라면 혹시 기억이 새록 새록 나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보니까 새삼 어린 시절,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추억과 함께 어린이나 청소년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옛 물건들에 대한 좋은 정보가 됐으면 합니다.
마을에 하나 뿐이던 '교환 전화기'...정겨움이 묻어 나는 옛 추억의 물건들을 보시면서, 아련한 추억속으로 한 번 떠나 볼까요?^^
이건 '풀무'라고 합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건데, 손잡이를 잡고 막 돌리면 사진 아랫 부분에 있는 구멍으로 바람이 나옵니다. 주로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쓰던 물건입니다. 저 어릴적에 시골은 대부분 아궁이에 불을 지펴 생활했는데, 이 때 요긴하게 쓰였지요.
그리고 추운 겨울이면 방아를 찧고 난 후 생기는 왕겨를 아궁이에 가득 넣고, 일단 이 풀무로 바람을 불어 불을 지핀 후 아궁이에 왕겨를 가득 넣어두면 밤새 왕겨가 서서히 타면서 방을 따뜻하게 해 줬습니다.^^
이 풀무 보니까 어릴 적 추억 하나가 생각나네요. 한 번은 왕겨를 잔뜩 넣고 마구 마구 이 풀무를 돌리다가 불이 확~ 하고는 아궁이 밖으로 솟구쳐나와 눈썹을 태워 먹은 적도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이건 '탈곡기'입니다. 가을에 추수할 때 쓰던 물건입니다. 지금이야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탈곡까지 하지만, 예전에는 일일히 낫으로 베고, 가을 들녘에 세워놓고 말린 다음 이 탈곡기에 탈곡을 했습니다. 완전 수동입니다.^^
피아노 칠 때 발로 누르는 것처럼 발로 꾹꾹 누르면 이게 막 돌아가는 데, 그 때 벼를 이곳에 대면 탈곡이 되는 거지요. 제가 어릴 적에 막 경운기가 시골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경운기와 함께 사용하던 탈곡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수동으로 하는 이 탈곡기를 이용해 가을 추수를 했답니다.
이건 '쟁기'입니다. 역시 경운기가 나오기 전, 시골에서는 논이나 밭을 갈 때는 소를 이용했습니다. 소 등에 멍에를 씌우고 이렇게 쟁기를 달아 논과 밭을 갈았습니다. 지금도 경운기를 쓰기 어려운 비탈진 산골 등지에서는 가끔씩 이 쟁기를 가지고 밭은 가는 장면을 볼 수가 있더군요.
하지만 역시 지금은 거의 그런 풍경을 찾아보기가 힘들지요. 뒤에 절구 방망이도 보이네요. 우리 시골집에도 아직 절구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 않습니다.
이건 '물지게' 입니다. 지게는 보통 짐을 실어나르는 짐 지게가 있고, 이렇게 물 등을 실어나르던 물지게가 있습니다. 꼭 물만 실어나른 건 아니고요, 좀 말하기 그렇지만 예전에는 지금과 같은 화장실이 아니고 다들 수세식이었는지라 화장실이 꽉 차면 나무를 연결해 길게 만든 바가지로 퍼 내서 텃밭 등에 거름으로 주었는데, 그 때도 이 지게를 사용했습니다. 일명 똥지게입니다.^^
이건 '얼맹이'라고 합니다. 주로 가을에 깨를 수확해 지푸라기 등 잡티를 골라내고 깨 알맹이만 걸러 낼 때 쓰는 물건입니다. 손으로 잡고 좌우로 흔들면서 탁탁 치면 깨만 구멍 사이로 빠져 나오지요.^^
이건 '키'라고 합니다. 히히! 오줌 싸면 이것 쓰고 마을로 소금 얻으로 다녔지요. 저도 딱 한번 이거 쓰고 진짜로 소금 얻으로 간 적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그 집에 무서운 멍멍이 놈이 있어서 날 보자마자 쫓아올 듯 하며 짖어대는 데... 어찌나 무서웠던지 엉엉~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이것도 얼맹이처럼 콩 등 곡식에서 작은 돌맹이나 다른 이물질을 골라낼 때 쓰는 물건입니다. 근데, 이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엄마가 곡식 등을 키에 올려놓고 위 아래로 흔들면, 이걸 '까불른다'고 하는데요, 신기하게도 곡식은 키 안쪽으로 모이고 돌 등만 키 맨 끝으로 밀려납니다.^^ 그러면 엄마는 휙~하고 돌 등만 땅에 떨어뜨렸지요. 저도 해 봤는데, 그게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마냥 신기하다는 생각입니다.^^
밑에 있는 것은 '닭어리'라고 합니다. 닭을 넣어 기를 때 쓰던 물건입니다. 병아리 보호를 위해 병아리를 이 안에 넣어두기도 했고요.
이건 '작두'입니다. 추수를 끝내고 나면 볏짚이 나오는 데, 시골에서는 소를 키웠기 때문에 이 볏짚을 그냥 버리지 않고 소 밥으로 썼습니다. 그냥 볏짚을 통째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 작두를 이용해 묶은 볏짚을 2~3 등분으로 잘라 소 밥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요즘은 잘 쓰지는 않고요 볏짚 자르는 기계가 대신합니다. 우리 시골집도 몇 년 전에 기계를 사긴 했는데, 에구 먼지가 하도 날려서 요즘에는 그냥 이 작두를 씁니다. 가끔씩 시골 가면 아버지와 함께 이 작두로 볏짚을 썰어 놓고 오곤 하지요.
이건 '망태기'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가방인 셈입니다. 주로 밭일이나 산에 약초 등을 캐러 갈 때 어깨에 메고 가곤 했습니다. 일하러 가기 전에는 호미 등도 넣고 가고, 일 끝나고 올 때는 이곳에다 그 날 먹을 고추며 채소 등을 넣어서 가지고 오곤 했습니다. 지금은 보기조차 힘듭니다.
이건 일종의 '멍석'입니다. 사각형 모양으로 넓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동그라미 모양으로 작은 것도 있습니다. 이건 주로 호박이나 가지, 채를 썬 무 등 채소를 말릴 때 쓰던 것입니다. 이 위에 널어놓고 햇볕에 말리곤 했지요. 이건 아직 시골에 가면 종종 봅니다.
이건 '재봉틀'입니다. 엄마들이 사용하던 거지요. 저도 기억나는 데, 왼쪽 밑에 실을 꿰는 바늘이 있는 데 엄마가 실을 잘 못 끼면 제가 끼워드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전기로 쓰는 자동 재봉틀이만 예전에는 이렇게 손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발을 이용해 돌리던 재봉틀을 사용하고 했습니다.
이건 '삼태기'라고 합니다. 예전에 엄마가 이거 가져 오라고 심부름 많이 시켰는데^^ 이것은 일종의 짐을 옮길 때 쓰던 물건입니다. 예전에는 밭 등을 일굴 때 돌이 많이 나왔는데, 여기에 돌을 담아 버리기도 하고, 또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 등을 여기에 퍼 담아 버리곤 했습니다. 역시 지금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풍선'이라고 합니다. 이 안에 벼를 넣고 돌려서 사용을 했는데요, 바람을 이용해 벼와 함께 섞여 있는 검불(지푸라기 등 여러 이물질)이나 쭉정이를 걸러내고, 충실한 알곡을 골라낼 때 쓰던 도구였습니다. 저에게도 무척 생소한 것이네요.
이건 '맷돌'입니다. 많이들 아실거예요. 두부를 만들 때 물에 불린 콩을 이렇게 위에 있는 맷돌 구멍에 넣고 갈지요. 그러면 사진처럼 콩물이 나오고, 이 콩물을 솥에 넣고 팔팔 끓입니다. 간수를 넣고, 천으로 만든 포대에 이 끓인 콩물을 넣은 후 기다랗고 굵은 나무로 꾸욱~ 누르면 천가마니 틈으로 끓인 콩물이 나오는 데, 이것을 네모난 틀 상자에 넣어두면 서서히 굳으면서 두부가 된답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맷돌이 돌인지라 혼자 돌리기는 좀 무리입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둘이 돌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끓이는 내내 솥에 들러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팔도 아프지요. 하지만 맛은 지금의 두부와는 비교가 안 되지요.^^
이렇게 어릴 적에는 맷돌로 갈아서 직접 두부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지금은 그 맛을 볼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맨 왼쪽에 있는 것은 '남포등'입니다. 일명 '등잔'입니다. 석유를 넣어 쓰던 것으로, 전기가 부족했던 옛날에 요긴하게 쓰던 물건이지요. 그리고 맨 앞에 있는 것은 '되박'입니다. 쌀이나 보리 등 곡식의 수량을 세던 물건입니다. 한 됫박, 두 됫박...이런 식으로요.
위에 보면 고무신도 보이네요.^^ 어릴 적에는 '조선 나이키'라고 부르면서 고무신에 나이키 표시 해 놓고 신던 생각나네요. 뒷 부분을 뒤짚어 덤프트럭이라고 하면서 모래 등을 싣고 놀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보면 전화기가 있죠? 이거 생각나세요? ^^ 마을에 하나 밖에 없던 '교환기 전화'입니다.
보통 이 전화기는 마을 이장님 댁에 있었지요. 서울 누나 등에게서 전화가 오면 이장님이 마을 방송으로 "누구네 딸이 전화왔습니다. 빨리 오시기 바랍니다"하고 알려주면 얼른 달려가서 전화를 받고는 했지요. 전화를 걸 때도 일단 교환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잠시 뒤에 연결이 되던 그런 시절에 사용하던 전화기였습니다.
지금까지 보신 옛 추억의 물건들, 이제는 일상에서 거의 보기 힘든 것들입니다. 이제 우리 부모님들이 안 계시면 어머니의 손 맛이 담긴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간장 등.... 그 맛도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빠른 문명의 속도를 우리는 발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우리는 우리의 옛 것, 우리의 소중한 옛 문화들이 너무도 빨리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