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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사색과 향기방

여관ㆍ모텔, 가족은 못 자고 연인들만 잠깐 쉬다 가는 곳?

 



"그 많은 숙박업소들 중에서

연인이 잠깐 쉬었다 갈 곳은
있어도 가족 잘 곳은 없더라!"


 

지난 주말, 딸이 다니는 유치원 어린이들이 수원 화성축제에 참여해 수원에 갔었다. 지방에서 이렇게 수도권으로 올라오기가 쉽지 않은지라,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아쉬워 토요일(13일) 저녁에 한강 시민공원에서 열렸던 세계불꽃축제에 구경 갔었다.
와, 사람 그렇게 많은 거 처음 봤다. 아이들 목마 태우고 불꽃축제 보는 데, 우리 꼬맹이들은 연신, ‘와~’ 소리를 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도 아내도 화려한 불꽃들의 향연에 완전 매료되었다.


가는 숙박업소마다 가장 먼저 묻는 말, "잠깐 쉬고 갈거냐?"
자고 갈 거라고 했더니 방이 있음에도 방이 없다고!
 

하지만, 감탄과 환호성도 잠시! 아이들도 피곤해 하고 졸린 시간도 된지라 좀 일찍 서둘러 빠져 나오는 데... 웬걸~ 어디서 사람들이 나타났는지, 정말이지 엄청난 인파들이 차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서울 지리를 몰라 어딘지는 정확치 않고, 원효대교 여의도쪽 롯데캐슬 아이비 아파트 사거리로 기억되는 데, 수만명이 쏟아져 나오면서 교통이 완전 마비됐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도 이미 군중심리가 작용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오도 가도 못하는 이 황당한 일을 40여분 동안 꼼짝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간신히 빠져나와 잠 잘 곳을 찾기 위해 여관과 모텔을 검색해 전화를 했다. 그런데, 방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면서도 대뜸 묻는 말이 ‘잠깐 쉬고 갈 거냐?’는 거였다. 숙박할 거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방이 있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방이 있기는 한 데 지금 이 시간에는 숙박이 곤란합니다.” 이러는 게 아닌가!


그 말의 뜻이 무슨 의도인지 알 것 같았기에 그냥 다른 곳으로 전화했다. 하지만 다들 같은 질문에 같은 답변이었다. 방이 있다고 했다가도 ‘쉬어 갈 거냐?’는 질문이 나왔고, 숙박 할 거라고 하면 방이 없다거나, 혹은 10시 30분 정도 이후에는 숙박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다른 모텔이나 여관에도 계속 전화를 해 봤지만 역시 돌아오는 답은 동일했다.

처음에는 ‘잠깐 쉬고 갈 거냐?’라는 말 속에 모텔이나 여관 입장에서도 방 하나를 전세내서 숙박을 하고 가는 사람들보다는, 말 그대로 잠깐 쉬어가는 손님을 받는 것이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리한다는 점에서 이해하려고 했지만, 지치고 피곤해 하는 아이들이 언제 자냐고 할 때에는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연인들이 잠깐 쉬었다 갈 방은 있어도 가족이 잠 잘 방은 없다고!
결국 밤 11기가 넘어서 겨우 아이들 재울 수 있는 방 구했습니다.

하지만 열 곳이 넘게 전화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답변은 ‘쉬고 갈 방’은 있어도 ‘숙박할 방’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다가는 잠 잘 곳을 못 찾을 것 같아 먼저 전화로 물어보지 않고 그냥 무작정 들어갔다. ‘쉬고 갈 거냐? 는 질문에 자고 갈 거라고 하면 또 방이 없다고 할까봐 이번에는 그냥 “쉬고 갈 거다”고 대답하자 열쇠를 내 주었다.


그런데 정말 황당했던 건, 계산을 하고 난 후 차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오자 정색을 하면서 “쉬고 갈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면서 “이러면 곤란하다”면서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게 아닌가! 나는 화가 나서 따졌지만, 오히려 그 쪽에서는 “다 아시면서 왜 그러느냐? 더구나 오늘은 주말 피크라 더더욱 안 된다”면서 등을 떠밀다시피 했다. 몇 군데를 더 가 봤지만 역시 동일한 답변만 들었다. 어린 아이들도 있는 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사정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애들이 많이 피곤하고 지쳤는지 자꾸만 “아빠, 언제 자? 방 없대?”하면서 나를 쳐다볼 때 정말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더더욱 화가 났다. 잠깐 쉬고 가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여관이나 모텔 가운데 잠잘 곳 하나 없다는 말인가? 어떻게 연인들이 잠깐 쉬고 갈 방은 있어도 가족이 잠잘 방은 없다는 말인가?


결국 그렇게 밤길을 헤매다가 11시가 넘어선 이후에나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이미 아이들은 차 뒷좌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리 연인들이 잠깐 쉬고 가는 게 돈이 되고, 또 그러한 목적으로 장사한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방이 뻔히 있으면서도 돈 벌려고 어린 아이들 있는데도 방 하나 내주지 않다니... 정말이지 그 넓은 서울 땅에서 잠 한 번 자기 힘들었던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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