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었지만 ‘행복’ 찾았다는 한 시각장애인의 삶!
장애인 돼서 행복?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죠?”
1급 시각장애인 권홍식씨.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은 행복하다'며 본명 대신 이름을 가명인 '권행복'으로 바꿨다.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죠? 하지만 전 시각장애인이 되고나서 더 행복해 졌어요. 몸이 힘든 것 보다 마음이 힘들면 더 고통스럽다고 하잖아요. 비록 몸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마음이 행복한 지금, 저는 무지 행복합니다.”
권홍식(38세)씨. 그는 지금 1급 시각장애인이다. 건강했던 권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건 5년 전. 평범한 회사원 시절, 유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술과 담배를 가까이 했던 권씨는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세상이 희뿌연 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겠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점점 상태는 악화됐고, 15번의 수술을 시도했지만 결국 시각장애라는 장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권씨는 갑자기 닥친 불행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2년여 동안 그는 세상과 등지고 방황했다. 삶에 대한 의욕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방황 끝에 생각을 바꿨다.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좌절을 딛고 새로운 삶에 도전한 권씨는 사물의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보일 때 뭔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2005년부터 익산에 위치한 전북맹아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안 보이는 만큼 더 노력하자’고 다짐 하면서 안마, 마사지, 지압, 양의학, 침술을 배우는데 온 땀을 흘렸다.
그렇게 2년 동안 새로운 삶에 도전했고, 올 2월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안마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은 ‘행복 경락ㆍ안마 치료원’에서 경락과 안마사로 일하고 있다. 권씨는 앞으로 주말을 이용해 몸이 불편하지만 돈이 없어 병원치료도 못하는 분들에게 봉사안마를 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 됐을 때 자신에게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그 고마움의 조금이라도 다시 갚기 위해서라고.
'시력' 잃었지만 '행복' 찾은 아들 보며 그저 아들이 대견하고 행복하기만 한 어머니!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 때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권행복씨. 맹아학교를 다니며 안마와 마사지 공부를 하면서 빼곡하게 써내려간 그의 노트다.
권씨가 시각장애인이 됐을 때 권씨보다도 더 가슴 아팠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다. 하지만 이제 아프지 않단다.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당신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좌절하지 않고 잘 살아주니깐 어미입장으론 고맙지요. 이게 효도가 아니고 뭐겠어요”
“어머니 그런 소리마세요. 아들이 이렇게 아픈 것 자체가 불효죠.”
“그런 소리마라. 니가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면 나는 세상 더 바랄 게 없어 ”
아들이 시작장애인이 돼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는 어머니 윤앵순씨는 “장애를 딛고 어엿한 직업을 얻은 아들이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며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단다.
하지만 권씨는 “지금까지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건강까지 온전치 못해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며 애써 눈물을 삼켰고, 그런 아들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던 어머니는 이야기 도중 자리를 피했다. 난, 그분들의 눈물이 아픔의 눈물이 아닌 행복의 눈물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자신의 원래 이름인 ‘권홍식’가 아닌 ‘권행복’으로 불러달라는 권행복씨. 비록 삶을 살아가는 데 등불이 되는 눈은 잃었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을 얻었다는 권씨를 만나며 행복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가진 능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에 있음을 아주 조금은 깨닫고 돌아왔다.
그의 이름대로 ‘행복’이 늘 그와 어머니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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