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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사색과 향기방

제사지방, 꼭 한문으로 써야하나?

 

제사지방, 한글로 쓰면 안되나?



제사가 있어서 시골에 갔다 와야 합니다.
아버지가 잊지 말고 ‘지방’을 써 오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방이라? 아버지 전화 받고 나서 지방을
쓰다말고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나네요


지방 쓰시죠? 손으로 직접 쓰시나요?
아니면 혹시 컴퓨터로 프린트하나요?

유교 전통이라지만... 우리 글인 한글이 있는 데, 왜 굳이 남의 나라 글자인 한문으로 조상을 섬길까요?

저는 제사 때 마다 꼬박꼬박 손으로 직접 써 갑니다. 올 초에 그냥 쉬운 대로 컴퓨터에서 프린트 해 간 적이 있었는데, 어르신들 보기에는 그랬는지, ‘조상님을 모시는 데 그게 뭐냐!’면서 크게 혼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컴퓨터로 뽑은 ‘지방’ 대신, 꼬박 꼬박 수성펜으로 직접 지방을 써야 했습니다.

어휴~ 그런데 언젠가 할머니 제사 때 깜박 잊고 지방 써 가는 것을 잊어버린지라, 큰 아버님댁에 가서 직접 지방을 쓰는 데 갑자기 할머니 본관인 ‘남양 홍씨’ 중에서 양(揚)자가 생각이 안 나지 뭡니까.^^
 
한참을 고민하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 간신히 쓰기는 했는데... 큰 아버님께서 절을 한 번 하고 난 후 잔을 따르다가 문득 지방을 보시고는 ‘양’자가 틀렸다고 하시더군요. 에구~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제사가 끝나고 난 후 저를 비롯해 사촌들이 모두 큰 아버님 앞에 무릎 꿇고 혼이 났습니다. 젊은 녀석들이, 아버지 세대들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운 녀석들이 지방 하나 못 쓴다면서요. 다음 제사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신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 지방까지 모두 써 본다면서 연습을 해 오라고 하시더군요.
저야 틀렸으니 아무 대꾸 없이 ‘네’하고 대답했지만, 갑자기 넷째 사촌형님께서 “세상도 바뀌고 그랬는데, 그냥 한글로 쓰면 안 되나요?” 했더랍니다. 물론 혼났지요. 법도가 있는 것이라며, 지방 쓰는 게 어려운 일이면 모를까, 왜 한글로 쓰냐면서 말입니다.

뭐, 한문으로 쓰는 게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이 글 쓰고 나서 저도 지방을 써야 하는데 문득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지방을 왜 꼭 한문으로 써야 하나요?

한문으로 쓰는 것이 유교사상이 오랫동안 지배한 우리 사회에서는 지켜야 할 전통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 유교사상이 지금에 와서 모든 면에서 100% 지켜야 할 전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켜야 할 전통의 또 다른 이면에는 그 유교사상이라는 것이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제 사회를 유지하는 사상적 측면도 컸고, 또한 사대주의에 기반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다른 측면으로 보면 그것이 법도이고 전통이라며 고수하는 여러 뿌리 깊은 관습들 중에 바로 잡아야 할 것도 많다고 봅니다. 그 중 하나인 한문으로 쓰는 지방도 하나가 아닐까요? 굳이 다른 나라 글자인 한문으로 아직도 써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의 경우 ‘顯考學生府君神位’라는 한문 대신, ‘아버님 00김씨 진철 신위’라는 식으로 한글로 쓰는 법도 있다지만, 사실 저도 생소하고 아마 이렇게 한글로 지방 쓰는 집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사지방, 왜 꼭 한문으로 써야 할까요? 한문 대신 우리글인 한글로 쓰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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