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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동영상 뉴스

화재 후 10년 방치, 이제와 문화재 등록한다고?

 

 

전북 군산은 일제 시대 호남평야의 쌀 수탈 중
심지로서 일제강점기의 아픈역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간직된 곳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일제시대 수탈의 상징적 건물이
있으니, 바로 일제강점기 일본의 국책은행이
었던 조선은행이 바로 그곳이다.




 

일제 강점기, 수탈의 아픈 역사의 중심이었던 일본 국책은행이었던 조선은행! 지난 시절 그 아픈 역사의 현장은 술과 춤을 추는 노래방과 나이트클럽 등 유흥주점으로 명성(?)을 떨쳤고, 또한 90년 대 후반 화재로 인해 심각히 훼손됐지만 지난 10년 동안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방치해 역사의 현장이, 역사문화재가 처참하게 파괴돼 있었다.

숭례문 화재에서 본 것처럼 한 번 훼손된 문화재는 그 온전한 복원이 어렵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지만 소 잃은 지 10년이 넘도록 방치된 채 훼손된 문화재, 그 현장에서 과거 일제의 아픈 역사가 아닌 오늘의 아픈 역사를 보았다

어디 우리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훼손되는 문화재가 이곳뿐이겠는가?



                         화재 후 무려 10년 넘게 방치!!
           다 훼손된 후 이제와 문화재로 지정하면 무슨 소용?
            이렇게 훼손되도록 지난 10년 동안 문화재청과 지자체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기록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 시절 호남평야의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탈해가기 위해 철로를 비롯 각종 관련 기관과 건물들이 세워졌는데, 이 중에서 그 수탈의 역사를 대표하던 곳이 바로 조선은행이었다. 일제는 이 조선은행을 통해 고금리 등 각종 횡포를 동원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땅을 빼앗고, 집을 빼앗고, 재산을 빼앗았다고 한다. (지금 일부에서는 일제 시대 이 같은 시설물들이 바로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데... 수탈을 위해 만든 철도와 도로, 건물 등이 근대화에 기여했다니...) 


이 같은 역사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조선은행이기에 그동안 수없이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며 ‘일제 수탈사 박물관’ ‘근대 문화역사관’ 조성에 대한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 때는 이 아픈 역사의 현장은 오히려 정 반대로 술 먹고 춤추며 웃고 즐기는 노래방과 나이트클럽으로 명성(?)을 떨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또한 화재가 나 심각한 훼손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이 넘게 단지 건물이 개인소유라는 이유와 예산부족을 들어 방치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건물 외부에는 ‘뉴욕 뉴욕’ ‘플레이 보이’ ‘노래방’이라는 간판이 깨어진 채 걸려 있으니지나가는 사람들은 이곳이 일제 시대 우리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는지, 유흥업소였는지 분간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지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일제 시대 그 고통과 아픔이 서려 있는 곳에서 웃고 즐기고... 또한 그 흔적이 자랑스럽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지금의 모습, 또한 화재로 인해 처참하게 훼손됐으면서도 지난 10년이 넘게 그대로 방치된 것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뒤늦게 문화재청과 지자체가 ‘국가문화재’ 등록 절차를 밟고 있지만(오는 6월경 국가문화재 등록 예정) 화재 후 무려 10년이 넘게 방치돼 심각히 훼손된 후 이제와 국가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한다고 하니, 이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도 부족할 판이다.

그동안 3.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매년 했던 말은 거짓이었나? 해방 후 무려 60년이 지나도록, 화재가 난 후 10년이 지나도록 과연 무엇을 하다가 이제와 다 훼손된 후에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말인가? 그동안 문화재청과 지자체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다 훼손된 후, 이제와서야 뒤늦게 문화재로 지정한다고 해서 이곳이 ‘역사 문화재로서, 아픈 역사의 역사교훈장으로서’ 다시 복원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디 우리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훼손되는 문화재가 이곳 뿐이겠는가?

 

숭례문 화재에서 본 것처럼 한 번 훼손된 문화재는 그 온전한 복원이 어렵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지만 소 잃은 지 10년이 넘도록 방치해 훼손된 문화재, 그 역사의 현장에서 과거 일제의 아픈 역사가 아닌 오늘의 아픈 현실을 보았다.